기타

서양철학의 원조, 탈레스

법문북스 2023. 8. 28. 11:15



서양철학은 전통적으로 고대 그리스, 특히 이오니아 지방으로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이오니아 지방은 아티카, 아테네, 사모스, 밀레토스, 에페소스, 및 에게해를 따라 그리스의 남동지역에서부터 소아시아의 서부 연안에 이르기까지 줄지어 있는 여러 섬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밀레토스 지방을 서양철학의 원조로 삼고 철학 여행을 시작하기로 하겠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저서 '형이상학'에서 철학의 원조를 탈레스라고 한 데 근거하는 것이다.

 

 오늘날, 밀레토스의 위치는 터키의 본토에 자리하고 있다. 밀레토스는 아테네인들에 의해 세워진 부유하고 번창한 그리스 도시였다. 이 도시는 해안 도시답게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물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한 말은 오늘날의 과학에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시의 세계에 대한 밀레토스 지방 사람들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만물의 근원이 그 어떤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이 논재는 오늘날의 과학에서도 문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초기 철학자들은 자연학, 보다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우주론'에 몰두하여 우주의 본성이나 본질을 다루는 형이상학적인 과제를 주로 다루고 있었다.

 

 만약 한집안의 초대가 생선장수고, 그 다음 대가 양복점 주인이었다면 생선장수인 1대와 양복점 2대 중 어느 대를 집안의 가통으로 삼는가 하는 문제는 가족회의의 결정에 따라 바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어느 결정이 옳은가 하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가장 오래된 1대를 가통으로 따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족적인 문제일 때는 생선장수를 초대로 하든 양복점을 초대로 삼든 별 지장이 없겠지만, 만약 학문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가 제기될 때에는 그리 단순한 문제만은 아니다. 이것은 제1대의 사상적 영향에 따라 그 뒤를 잇는 흐름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를 탈레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만물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또 어떻게 소멸되어 가는가 하는 원리를 조리 있게 설명하여 만물의 근원이 되는 것을 찾아낸 점'에 있다.

 

 

 


 탈레스는 그리스의 칠현 중의 한 사람으로 일식을 예측하였고, 그림자의 길이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쟀으며, 이집트에서 측량법을 배워 와 항구에서 배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등 놀랄 만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철학자라기보다는 뛰어난 지식인, 즉 현인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아시아 연안의 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에서 태어났다. 페니키아인의 혈통이며, 당초에는 상인으로 재산을 모아 이집트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배웠으며, 페르시아 정복 때 리디아 왕을 따라가 조언하는 등 정치적인 식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탈레스는 왜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했을까. 여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째, 탈레스의 고향인 밀레토스 지방은 에게해에 둘러싸여 있어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전통에 의해 추출된 원소들 가운데 하나이면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기에 물은 탈레스의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둘째, 물은 모든 생명체 속에 존재하며 생명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물은 얼면 고체가 되고, 수증기로 증발하면 '공기'가 되며, 또한 불에 의해 일종의 연료로 사용됨으로써 전통적인 세계의 네 가지 근본요소 중의 세 가지 다른 형태들을 취할 수 있는 실체였기 때문이다.


 만물의 근원은 원래 재료, 즉 본질을 뜻하는 것이다. 탈레스는 눈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현상을 넘어서 그러한 현상의 근원이 되는 근원, 본질을 밝히고자 했다. 

 한편, 탈레스는 만물에는 신들이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였고, 자석은 철을 움직이기 때문에 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즉, 신과 혼들은 움직이는 것, 운동 그 자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전해주고 있다.


 "탈레스는 지속적인 별에 대한 관측으로 이듬해엔 올리브가 풍작이 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였다. 그래서 그는 키오스와 밀레토스 지방에 있는 모든 올리브 착유기를 헐값으로 빌려 놓았다. 이듬해 수확기가 되자 과연 올리브가 풍작을 이루어 착유기가 부족하였다. 이때 그는 착유기를 비싼 값으로 되빌려 주고는 많은 이익을 남겼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사람들이 철학은 무익한 것이라고 탈레스를 비난하였기 때문에 그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쓰고 있지만, 현대 상술에 있어서도 탈레스의 지혜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 그를 현대 상술의 원조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탈레스는 정치가이자 치수 사업가이기도 했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는 달리 아주 현실적인 사업가였는지도 모르겠다. 탈레스와 같은 미리 예건하고 독점하여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지혜의 힘은 오늘날 월스트리스 같은 곳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탈레스에 관한 일화 중에는, 그가 천문학에 관심을 기울인 나버지 밤중에 별자리를 보며 걷다가 시궁창에 빠져서 하녀의 비웃음을 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철학의 기원은 이오니아 계통과 이탈리아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이오니아 계통은 현실적인 긍정을 특색으로 하고, 이탈리아 계통은 오르페우스교적인 피안의 신앙을 특색으로 하였다. 이에 탈레스는 이오니아 계통 철학의 시조였을 것이다.  


 당시 이오니아 계통의 철학자들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탈레스는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라고 대답하였고, '그럼 가장 쉬운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그는 '남에게 충고를 한다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또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잘못됐다고 비난하는 따위의 일을 절대로 저지르지 않는 데 있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탈레스가 얼마만큼이나 그의 사상에서 철학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는가 하는 데 있어서 의심스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견해에 있어서만큼은 충분히 철학적이었다. 이처럼 탈레스는 존재의 문제에 관련된 최초의 물음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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