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어린이의 달'을 만든 아낙사고라스
엠페도클레스와 같은 다원론자로서 엠페도스클레스의
사상을 한층 더 발전시킨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 지방,
밀레토스 북부의 클라조메네 사람이다. 그는 처음으로
아테네에 철학을 이식하여 엘레아 학파의 출현에 의한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위기를 구하려고 하였다.
그는 엠페도클레스와는 다른 계보에 속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자연관은 구조적으로 서로 비슷하다.
아낙사고라스 역시 원소의 결합과 분리 속에서
생성과 소멸을 이루어 나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만물 안에는 등질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모든 것에는 모두 씨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혼합의
비율에 따라 모든 물건의 성질 차이가 생긴다고 하였다.
단 이성만은 예외로, 이것은 가장 순수한 것인 동시에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하였다.
아낙사고라스는 아마도 입버릇처럼 이성에 관하여 말했을 것이다.
그의 별명이 누스였다고 하니, 그는 고향을 떠나 아테네에서 살면서
소크라테스 등에게 자신의 학설을 전파했다. 그러다가
'태양은 불타는 돌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페리클레스 :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와 예술가 소포클레스 등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아테네에 최초로
민주정치를 실시한 정의 정적에 의하여 독신죄로 고발당해 망명했다.
망명간 도시의 관리가 "소원을 말해보시오"라고 말하자
그는, "내가 죽은 달에는 매년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소"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어린이 날'이 아닌 '어린이의 달'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에서 굴원이 멱나강에 몸을 던지기 150년이나 전의 일이다.
헤겔의 <철학사> 중 '회의론'장에는 아낙사고라스의 주장인 '눈은검다'라는 증명이 소개되어 있다.
"눈은 육안으로 의게 보이나 사유적인 이유에 의한다면 검다. 눈은 언 물이다.
물은 색깔이 없다. 그러므로 검다. 따라서 눈도 검은 것이 틀리없다."
바로 이 주장이 문제시되어 아낙사고라스는 고발당했다. 그는 '눈이 희냐, 검으냐'라고 심문당했다.
그리고는 '이성은 순수하다. 순수한 것은 색깔이 없다. 그러므로 검다'라고 설명을 했다고 한다.
다양한 철학에 대해 알고싶으신 분은
아래 <철학속으로의 여행>을 클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