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운명을 딛고 일어선 삶

법문북스 2024. 4. 25. 11:42

본문 中

 

“자, 그럼 짐부터 차에 싣고, 시간이 남으면 공항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민숙과 한 살 아래 1학년인 동생 경숙은 방 한쪽 구석진 곳에 서있었다.

그들 자매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고, 어른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차츰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자매는 계모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어놓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있어!”


계모가 자매를 흘겨보듯 말했다.

계모의 저 날카로운 목소리는 언제나 자매를 무서움에 떨게 했다.

자매는 복도에 나와 잠시 서 있다가 가방을 들고 나온 아버지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가족은 이 모텔에서 한 달 넘게 지냈다.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한 상태에서 살던 집을 매도하다 보니 주택 명도일이 먼저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계모는 전처의 딸들인 자매가 아주 어릴 때부터 모질게 때리며 밥을 굶기는 등 온갖 학대를 계속 해왔고,

그녀가 집 안에 있는 동안에는 아이들을 한 발짝도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자매는 무서운 계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기회가 이때다 싶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고, 무작정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다시 이층으로 올라갔고,

아버지의 친구들도 모텔 후문 쪽 마당에 세워놓은 차에 트렁크들을 내려와 싣느라 바쁜 사이

자매는 모텔 정문을 빠져나와 바로 옆 골목길로 단숨에 뛰어갔다.

그리고는 다른 골목길 모퉁이를 두 번 돌아 나온 후 도로를 건너 시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겨울철 이른 아침의 낡은 재래식 시장 안은 을씨년스러웠고 어두웠다.

양쪽 점포들 사이의 하늘은 칙칙하게 보이는 플라스틱판으로 덮여 있고,

통로 중간에 길게 놓인 좌판대는 모두 국방색 천들로 덮인 채 동여매져 있었다.

점포들은 하나같이 문이 닫혀 있었고, 오가는 사람도 한 사람 없었다.
손을 꼭 잡은 자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이제는 어른들이 자신들을 뒤쫓아 오지 못할 만큼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자매는 약간은 안심이 되어 가쁜 숨을 고르면서 이때부터 뛰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인데도 온몸이 더워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자매는 여전히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떡하지?’ 민숙이 저만치 앞을 보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차가 다니는 거리로 나온 그들은 좌우를 살피며 정류장으로 걸어가 버스를 탔다.

그 버스는 학교에 갈 때마다 타고 다니던 버스였는데도 자리에 앉아 곧바로 몸을 앞으로 푹 숙여

혹시라도 차창 밖에서 자신들을 볼 수 없도록 조심했다.

 

 

 

이십 분쯤 타고 온 자매는 버스에서 내려 다니던 여자중학교 근처에 있는 제과점에 들어갔다.

따뜻한 우유 한 잔씩을 시켜놓고 한참 동안을 말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겨울방학 기간이라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언니, 비행기 말고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경숙이 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 네가 세 살이고 내가 네 살일 때 우리를 버리고 가버린 엄마라는 사람. 얼굴 모습도 잘 떠오르지 않지만, 두 딸자식의 이 난감한 처지를 어디서 듣고 안다면 여기로 달려올 사람일지 생각해 봤어. 그리고 너와 내가 지금보다 세 살만 더 나이가 많았으면… 하고 생각해 봤어.”


민숙은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사람 앞에 놓인 우유 잔에는 우유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민숙은 우유가 담긴 잔 언저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걱정하지 마. 나한테 생각이 있어.”


경숙이 잔을 내려놓으며 언니에게 말했다. 예쁜 두 눈에 약간의 생기가 보이는 듯했다.


“생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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