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5

한국의 해학과 육담

마을을 구한 노파의 지혜 조선 중종 때, 어느 순찰사가 도내 대촌동 뒷산에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쓰려고 했다. 그러자 600여명의 대촌동네 사람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순찰사의 권력이 무서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대신 이들은 으슥한 장소로 모여서 의논했다. “만약 순찰사가 이곳에 묘를 쓴다면 우리 대촌동은 반드시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나서서 임금에게 직접 소를 제기하거나 관아에 호소문을 올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때 이웃에서 술을 파는 노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사또로 하여금 시체를 묻지 못하게 하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무엇이 근심하시오. 여기에 모여 있는 한사람 당 한 냥씩만 거두어 나를 준다면 마땅히 목숨을 걸고 처리하겠소.” “만약, 실패한다면 어떻..

기타 2023.10.04

이방원의 정치적 내조자이자 동지였던 원경황후 이야기 !!

태종의 아내 원경왕후 민씨는 원래 고려 말엽의 중신이던 민제의 귀동녀로서 공민왕 14년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해 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민씨는 장성하여 이씨 가문에 시집을 가면서 영예와 비극이 상충되는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 운명의 여인이었다. 태조는 전저 한씨 소생인 여섯과 후처 강씨의 몸에서 난 둘까지 모두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맏이가 일찍 죽어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세자를 책봉해햐 할 시점에 이르렀을 때 는 어린막내 아들 방석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아리따운 젊은 후처의 아양에 마음이 흐려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 낳은 어린아들이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던 것이다. 하지만 범장다리 같은 큰아들이 여럿일 뿐더러 기질로나 수완으로나 아버..

카테고리 없음 2021.02.05

우리 조상들의 설화세계를 알 수 있는 한국의 전설, 해학, 야사, 기담전서를 살펴봅시다. (전설,설화,야사,야담,기담전서)

잘 아시다시피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설화세계는 세계에 자랑 할만한 문화유산입니다. 갖가지 이야기들이 너무나 재미있고,구수한 정을 가지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 와 미래를 꿰뚫는 재치와 지혜가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놀랍게도 봉건제도 속에서 살았으면서도 여유있는 유머를 잃지 않았고 때로는 윤리와 도덕에 대한 그들 의 사상을 민담을 통해 적나라 하게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옛날 어느 고을에 한 감사가 새로 부임했는데, 위인이 술과 계집만을 좋아하여 항상 질탕한 연회가 벌어지니, 백성들은 점점 가난해지게 되었다. 이 고을의 기생들은 날이면 날마다 몸단장을 곱게 하고 연회에 참석하느라 바빴고 백성들은 그것에 쓸 술과 고기를 대기에 힘이 겨웠다. 감사가 물리지도 않는지 매일 밤마다 새 기생을 무..

기타 2020.08.21

조선시대의 일상과 해학을 알 수 있는 <한국의 해학과 육담>

구전을 바탕으로 하고, 다시 구전되는 이야기인 야담은 문헌설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알려진 인물에 관 한 일화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엔 하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길고 복잡한 사건을 전개하는 작품으로 등장한 것 이 야담의 변천사입니다. 그런 것들은 전설과 민담을 복합시키고, 유기적인 구성을 갖추 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신분제의 동요, 화폐경제의 발달,민중기질의 고양 등으로 빚어진 자아와 세계의 대결 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야담은 한문을 겨우 아는 사람들 까지 즐겨 읽어 대단한 인기를 누리면서 한글로 번역되기도 했습 니다. 소설처럼 내용이 풍부하고 표현이 다채롭게 되었습니다. 독자층도 남성으로 이루어져 여성독자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흠이었지만 여성이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

기타 2020.08.19

야담과 야사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봅시다(야담,야사,조선,조선시대,이조,역사)

야사의 사전적 의미는 '민간에서 사사로 지은 역사'로 되어있습니다. 정사가 정부의 전담기구에서 사실 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여 편찬 한 공식 기록인 데 비하여, 야사는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민간 인의 자격으로 기록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야사는 엄밀한 의미의 역사로서는 가치가 없는 한낱 옛 이야기에 불과하냐 하면 천만 의 말씀입니다. 정사는 시대 상황 의 주체인 자, 승리한 자의 기록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흐름이나 내용이 주관적이고 자기 본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역사기록의 책임을 맡은 사관 들은 임금으로부터도 독립적 이고 객관적인 지위를 보장받았 다고는 하나,그들 역시 그 시대 의 주체인 승리 집단의 일원이며 무오사화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붓대를 잘못 놀린 ..

기타 20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