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한국의 해학과 육담

법문북스 2023. 10. 4. 10:09

마을을 구한 노파의 지혜

조선 중종 때, 어느 순찰사가 도내 대촌동 뒷산에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쓰려고 했다. 그러자 600여명의 대촌동네 사람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순찰사의 권력이 무서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 대신 이들은 으슥한 장소로 모여서 의논했다.


“만약 순찰사가 이곳에 묘를 쓴다면 우리 대촌동은 반드시 재앙이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나서서 임금에게 직접 소를 제기하거나 관아에 호소문을 올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때 이웃에서 술을 파는 노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사또로 하여금 시체를 묻지 못하게 하는 쉬운 방법이 있는데, 무엇이 근심하시오. 여기에 모여 있는 한사람 당 한 냥씩만 거두어 나를 준다면 마땅히 목숨을 걸고 처리하겠소.”
“만약, 실패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때는 나를 죽여도 원망하지 않겠소.”


그래서 한 냥씩을 거두어 주었는데, 그 돈은 무려 수천 냥이나 되었다. 노파는 사람을 시켜 순찰사가 무덤을 옮기는 날을 미리 알아냈다. 노파는 그날 한 단지 술과 한 마리 닭을 안주로 만들어 길가에 앉아 기다렸다. 얼마 후 순찰사가 산으로 오르자 옆에서 합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쇤네는 옛날에 죽은 지관 김유정의 처입니다. 사또께서 이곳에 무덤을 옮겨 장사를 지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술과 안주를 장만해 축하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하인들이 노파의 접근을 막았다. 그때 순찰사는 지관의 처라는 말에 노파를 불러서 물었다.


“자네는 어떤 이유로 이곳을 명당이라고 생각하는가?”
“쇤네의 남편이 생전에 말하기를 이곳에 무덤을 쓰기만 하면 아들이 당대에 반드시 왕후가 된다고 했습니다. 쇤네가 매일 이곳을 지나다녔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무덤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 순찰사께서 이렇게 좋은 명당을 알아보시고 무덤을 쓰려고 하는데, 내 어찌 축하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쇤네에겐 늦둥이가 하나 있습니다. 엎드려 청하건대 후에 거두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들은 순찰사는 크게 놀라면서 하인들을 시켜 노파의 입을 막게 한 다음, 그곳에다가 무덤을 이장하지 않고 허겁지겁 되돌아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서평 한준겸은 기묘년에 치른 사마시에서 장원급제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어느 날 하의 홍유를 만나기 위해 동호 독서당을 찾아갔다. 하지만 하의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학사 신광필만 혼자 있어서 인사했다. 그러자 신광필이 물었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소생은 시골태생인데 무인으로 금위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찾아 이곳을 왔다가 높으신 어린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마침 잘 됐네. 오늘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데 우리 풍월이나 논하세. 어서 운을 불러보게나.”
“죄송합니다만, 풍월이 무엇인줄도 모릅니다.”
“사물에서 흥취를 느껴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풍월이고, 글자를 불러서 글귀 끝에다가 붙이는 것을 운이라고 하네.”
“그렇습니까? 본인은 일찍부터 공부보다 활쏘기를 익혔습니다. 그래서 글자를 모릅니다.”


라면서 끝까지 거듭 사양하자, 신광필이 졸랐다.


“그러지 마시고, 그대가 아는 글자만 부르게나.”

이에 한준겸은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저는 무인이기 때문에 짧은 지식 안에서 운자를 삼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입을 열었다.


“향각궁鄕角弓또는 흑각궁黑角弓의 궁자가 어떻겠습니까?”
“좋네.”


라고 대답하고는 곧바로 ‘천리 이 강산을 피리 한소리에 보내니 의심이 커구나. 이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듯 하여 두 구를 마쳤다~’라며 읊었다.
이 소리에 하의가 잠에서 깨어나 한준겸을 보자, 기뻐서 두 손을 잡고 물었다.


“이 사람아,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인가?”

라고 반기자 신공필이 하의에게 먼저 말했다.

“아! 한내금이 부르는 운자가 매우 기특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하의는 껼걸 웃으면서 대답했다.

“광필, 자네가 속았어. 하하하. 이 사람은 내 처남인 한준겸일세.”
이에 신광필은 크게 놀라는 한편으로 그에게 속은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미승이 먹은 독과일

충주의 어느 사찰에 이곳을 지키는 중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물건을 탐하고도 매우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 중은 한 사미승을 데리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먹을 것을 재대로 주지 않았다. 그는 깊은 산중에서 시간을 알기 위함이라며 닭 몇 마리를 기르면서 매일 달걀을 거뒀다. 어느 날 그는 그 달걀을 삶아놓고 사미승이 깊이 잠들자 혼자서 먹었다. 이때 사미승은 벌떡 일어나 거짓으로 모른 척하면서 물었다.


“스님께서 먹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거? 무 뿌리이다.”


며칠 후 주지가 잠을 깨어나면서 사미승을 불러 물었다.


“지금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이때 닭이 울자 사미승이 말했다.


“아, 벌써 밤이 깊어 무 뿌리 아버지가 울 습니다.”


과수원에는 잘 익은 감을 따서 광주리에 담은 주지는 대들보 위에 몰래 숨겨두고 하나씩 꺼내 먹었다. 이때 사미승이 무엇이냐고 묻자 주지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독한 과실로 아이들이 먹으면 혀가 타서 죽는다.”


며칠 후 중은 밖을 나갈 일이 생겨 사미승에게 방을 지키게 했다. 사미승은 대들보 위에 있는 감광주리를 내려 멋대로 먹고, 차를 가는 맷돌에 꿀단지를 던져서 깨뜨린 다음 나무 위에 올라앉아 중을 기다렸다. 중이 돌아와 방문을 열자, 꿀물이 방에 가득했고 감광주리는 땅위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이에 화가 치민 중은 막대를 손에 쥐고 나무 밑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빨리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사미승은 이렇게 둘러댔다.


“소자가 실수로 차년을 옮기다가 잘못해 꿀단지를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작심하고 목을 매려고 했지만 노끈이 없었고, 목을 찌르려고 했지만 칼이 없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신 광주리의 독과를 모두 삼켰습니다. 그렇지만 질긴 목숨이 끊어지지 않아 나무위로 올라와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미승의 말을 들은 중은 껄껄 웃으면서 그를 용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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